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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팔짝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유용주



땀을 흘리면서 나쁜 피가, 내 몸에 들어 있는 독이 모두 빠져나가기를 바랐다.

엎드려 울면서 내 몸에 남아 있는 한이 전부 빠지기를 기다렸다.
부드러워지기를 바랐다.
따뜻해지기를 바랐다.
독이 몽땅 빠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살고 싶었다.

살모사는 독이 다 빠져나가면 죽는다.
나무도 뿌리가 뽑혀 수액이 다 빠져나가면 말라 죽는다.
독 하나로 버텨왔는데, 독기 하나로 견뎌왔는데, 독을 더 쟁여야 하나 탈진할 때 까지 빼내야 하나.
밤을 새워 우는 저 벌레도 울음이 그치면 사라지리라.

저 푸른 나무와 독을 얼마나 빨아 마셨는가.
몸의 독이 빠지면, 푸른 아카이사 가시 같은 독이 불쑥 솟아오른다.
새벽 바다는 뭍에 상륙하자마자 푸른 피를 쏟으며 속절없이 쓰려진다.
쓰러지면서 쌓아 올린 사리들의 푸른 무덤.

- 유용주,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 -


* 2002년 9월, 어린시절 투자 받아 시작하였던 사업이 완패로 끝을 맺고

예의 그렇듯, 속 깊은 고민 하나 털어 놓지 않고 혼자 삭히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미리 충격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실재 어려움이 닥치면

그 여진은 어떠한 크기로든 전달되어진다. 또한 그 어려움 자체보다는

그것을 삭히는 외로움이 더 큰 법이다.

동대구역에서 따뜻한 책이 그리워 역내에서 구입한 책.
제목에서 어쩌면 위로를 받고 싶었으리라.
유용주시인의 유난스럽게 힘든 삶 때문인지, 그의 외모에서는 시인다운
- 보통 시인하면 떠오르는 것들. 지적외모, 마르고 창백한 얼굴, 정적인 인상, 두꺼운 안경 등 -
인상은 찾아 볼 수 없다.
막일로 단련된 그의 인생은 그의 외모에서도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떠랴. 힘겨운 삶을 산, 고뇌와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운 이들은 모두 시인이다.

한때는 삶에 대한 초월의 방편으로 힘든 극복의 경험이 그것의 정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험에 대한 욕심으로 어떠한 두려움 없이 이것 저것에 부딪혔다.
그래서 종종 찾아오던 힘겨움도 반갑게 맞을 수 있었다.
어설픈 도전이나 열정의 객기화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들의 생활에 비할 수 있으랴.
그들에게 삶은 고단함외 그 무엇도 아니다.

시인이 이미 언급했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
그 삶의 유별나도록 고되고 힘들었던 시절과 응어리에 대해서.
개인적인 경험이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순 없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도 삶의 한 가운데를 관통한 그 '이들'중 한 사람이기에.

경험과 그것에 대한 소화는 철저하게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삶이 누구의 삶보다 편하다거나
힘들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유치하고 질 낮은 비교인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아픔이나 부조리가 만연할 때,
특히 그것이 우리를 비웃듯 코 앞에서 위세할 때,
우리의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당당할 때,
이 세상의 어떠한 종교나 진리도 그 가치를 잃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뿐이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리라.
당신이 살아 왔듯이,
내가 살아 왔듯이,
우리는 기꺼이 살아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