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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팔짝

죽음을담담하게대비하는방법 - 움베르토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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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이 나만의 독특한 생각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

죽음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문제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無)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식으로 제기된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통계가 입증하듯이 죽음은 결코 비신앙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신앙인들 역시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죽기전의 삶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것을 당장 놓아 버리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가능하면 나중에 가기를 바란다.
지금은 내가 여기에 있지만 얼마후에는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주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으려면 우선 인간은 모두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는 쉽다.
죽는게 내가 아니고 소크라테스라면.
그러나 바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되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최근에 크리톤이라는 걱정 많은 제자 하나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죽음에 제대로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지."
크리톤이 얼떨떨해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가 말귀를 알아듣도록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해 보게. 만일 자네가 이승을 떠나려는 순간에,
젊고 매력적인 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즐기고,
지혜로운 과학자들이 우주의 마지막 신비를 밝혀 내며,
청렴 결백한 정치가들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신문과 텔레비전은 유익한 정보제공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건전한 기업가들은 마셔도 좋을 만큼 맑은 시냇물과 푸르른 수풀이 우거진 산과

오존층의 보호를 받는 청명한 하늘과 단비를 뿌려 주는 솜털 구름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신앙인이라 해도 어떻게 미련 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겠는가?
자네가 이승을 떠라려는 참에 그렇게 멋진 일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딜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게.
자네가 이 눈물의 골짜기를 곧 떠나게 되리라고 느낄 때, 인간 50억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온통 바보들로 가득 차 있다고 확신하는 경우를 말일세.
즉,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연놈들도 바보고,
우주의 신비를 풀었다고 믿는 과학자들도 바보고,
우리 사회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가들도 바보고,
우리의 신문들을 쓸데없은 기사와 하찮은 가십으로 가득 채우는 기자들도 바보고,
지구를 파괴하는 탐욕스런 기업가들도 다 바보라고 말일세.
그렇다면 이승을 떠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자네는 매우 만족해서 마음놓고 이 바보들의 골짜기를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 움베르토 에코(Eco, Umberto),   '죽음을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 이 유머넘치는 양반을 처음 알게 된건 '장미의 이름'이라는 그러니까 다빈치코드의 원조 뻘인 책을 보게 되면서다.
소설에 대한 흥미가 적은 나는 몇 권의 추리소설을 읽어보았을까?
아마 '장미의 이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런종류의 책에는 인색하다.
너무 오래전이라 왜 읽게되었는지도 기억도 가물거리는 이 훌륭한 '스릴러'에 땀을 쥐는 전개도 전개지만

중세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나 이해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하기사 그에게 지성이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단어는 없겠지.

이 '호기심 덩어리 지성인'의 짧은 산문형식으로 엮인 이 책은 글을 쓸 당시와는 너무도 급변한 요즘과는
거리가 먼 오래된 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발하고 독특한 시선은 유쾌하고 한참을 웃게 만든다.

어거지로 쥐어짜면 절대 나올 수없는 진정한 볼 수 있는 삶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있을까?
그저 그 유머를 받아들이고 낄낄거린 후 책을 덥고는 라면 하나를 끓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