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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팔짝

나를 만나거든 - 이용악



나를 만나거든
- 이용악

땀 마른 얼굴에
소금이 싸락싸락 돋힌 나를
공사장 가까운 숲속에서 만나거든
내 손을 쥐지 말라
만약 내 손을 쥐더라도
옛처럼 네 손처럼 부드럽지 못한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주름 잡힌 이마에
석고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마디도
나의 침묵에 침입하지 말아다오

폐인인 양 시들어져
턱을 고이고 앉은 나를
어둑한 폐가(廢家)의 회랑에서 만나거든
울지 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평범한 표정을 힘써 지켜야겠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 이용악, '낡은 집', 나를 만나거든 -


* 울지 말고 웃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때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때
그 시간도 공간도 텅빈 듯한 그때의 심정이
이렇듯 오롯이 드러난 시가 있을까.

이념으로 묻혀버린 시인들.
시대에 무임승차한 서정주같은 이는 잘도 살다 갔지만
거친 손과 불만이 일렁진 주름의 세련되지 못한 투박한 사내들은
혼자 읊조릴 뿐이다

이 심란한 시로 봄날의 어수선함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