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때였던거 같다.
부활2집을 사서 반 친구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광화문 즉석 떢볶이의 양대 산맥 중 한 곳인
미리내에 갔었다. (다른 한 곳은 선다리 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가물 가물...)
서빙을 보던 우리또래의 알바 여자애가 테이블에 있던 부활의 2집 앨범을 보고는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록그룹에 대해서 여자애들이 무얼 알겠냐만
- 지금도 여성취향의 음악은 아니기에 여성팬은 극소수인데 예전에는 더 했다.
그나마 본조비 (Bon Jovi) 등 때문에 저변이 넓어져서 이정도니 -
나름 메탈키드였던 나는 제법 대답을 잘 했던 것 같다.
그 여자애가 돌아간 후 우리는 서로 낄낄대며 웃엇던 기억이 난다.
뭐 그런 소실적 얘기를 하기위해 오랜 기억을 끄집어낸건 아니다.
당시 국내 락 환경이 황무지 였기에 - 전두환시대가 끝난지 몇 년이 안되었고
그 연장선에 있는 노태우 집권 초기였다!!!
- 외국의 밴드를 듣는 이들도 많지 않았고 국내 락의 역사도 제대로 시작할 즈음이였다.
그러니 여자애 - 소녀 - 가 국내 메탈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정도로 당시 부활은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반에 친구가 테이프로 시나위의 '겨울비'를 들려주었다.
그저 좋네라며 무덤덤 하던 나는 김종서라는 남자 보컬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시 난 레인보우의 디오 (Ronnie James Dio)에 흠뻑 빠져있었으니 김종서의 보컬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었겠지만
그런 놀라움과 새로운 문물(?)들이 락이라는 이미지로 게 녹아 들었다.
내게 락은 일종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부터 자유로운 그 무언가였다.
확실히 부활은 시나위에 비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그것은 아마도 밴드의 리더였던 신대철과 김태원의 음악방향이 달랐기 때문인 듯한데
연주자와 작곡자의 차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
하여튼 남성적이고 굵은 음악을 하던 시나위에 비해 부활은 키보드 등을 잘 활용하여
좀더 클래식컬하고 프로그래시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는데
특히 김태원의 뛰어난 작곡과 유려한 작사 능력은 빛이 나도 너무 난다.
물론 이승철이라는 꽃미남의 뛰어난 보컬이 있었기에 효과는 배가 되었지만
부활의 최대 장점은 김태원의 그 천재적인 곡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시나위에 이런 곡만드는 멤버가 반명이라도 있었으면...
한곡 버릴게 없는 컨셉(Concept)앨범으로 당시의 환경을 고려해보면 김태원이니까 가능했던 역작이다.
특히 회상시리즈는 지금까지도 부활 최고의 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짜여진 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천국에서'와 ‘Jill's theme'의 뜨거운 연주까지.
락이라는 장르를 떠나 국내 가요의 역사를 통틀어도 김태원은 손꼽히는 음악인이다.
그의 어두웠던 과거 - 대마초 사건 등 -이 아쉬운 이유는 물론 윤리적인 측면도 있지만
길었던 방황기 때문에 잃어버린 김대원의 '음악적 역사' 때문이다.
그것은 임재범에서 느끼는 아쉽움과는 다르다.
임재범은 그가 가지고 있는 그 하드웨어적인 아쉬움, 가요역사를 통 틀어 최고의 보컬 중 한명으로
한때 세계 최고수준의 보컬리스트로서 보컬의 전성기를 지나버려 이제는 더이상 그 강력하고
믿기 힘든 목소리를 듣지 못함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임재범은 그러한 과거때문에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줄 수있는 몇 안되는 가수가 되었지만.
하지만 김태원은 그러한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곡을 만드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과연 지금 김태원은 당시의 감성을 이을 수있겠는가.
그의 고백처럼 이제 그는 그러한 음악을 만들기에는 감성이 소진되어 버렸다.
물론 김태원이 곡을 만드는 개인적인 소싱 (과거의 기억 등에 의한 감성)이 다했다고 하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것을 이끌어줄
젊은시절이 지나버린 것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늙어가는 것이 아쉬울때가 있다.
조용필, 송창식, 윤시내가 그렇고 (신중현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
토미 리 존스 (Tommy Lee Jones), 제프 브리지스 (Jeff Bridges), 케빈 스페이시 (Kevin Spacey)가 그렇고
임달화,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 로버트 드 니로 (Robert De Niro), 스티브 부세미 (Steve Buscemi)가 그렇고
크리스토퍼 월켄 (Christopher Walken), 임청하, 성룡, 장만옥, 게리 올드만 (Gary Oldman)이 그렇다.
백윤식이 그렇고, 지나 데이비스 (Geena Davis), 커트 러셀 (Kurt Russell), 맥가 가 그렇고
마크보울스 (Mark Boals), 주성치, 전인권, 그리고 홀연히 이 바닥에서 사라진 최구희 가 그렇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사라지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또한 빨라지는 것,
그래서 나는 가끔 풋풋한 연주를 하는 'Jill's theme'을 듣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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