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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사촌 형

외사촌 형이 있다. 
큰집의 4남매 중 첫째다.
소박하고 수더분한 형. 형 이름처럼 順한 형. 
(형이름 '순'이 이 한자인지는 모르겠다)

중학교 재수, 고등학교 재수, 대학교 3수 실패 후 군입대
그리고 다시 3수.
그렇게 의대에 들어갔다. 
그 형이 왜 그렇게 의대를 고집했는지 모르겠지만, 
형 자신의 발신을 위한 결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형의 살아온 궤적을 보면 그렇다.

의대시절 가난하여 학교에서 집으로 2시간을 걸어
다녔다. 왕복 4시간. 집에서 공부하려 교본
(사람의 팔 다리 같은. 외할머니께 들은 얘기라
정확히는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가방에 넣고 새벽에
집에 걸어 오다가  불신검문에 걸려 가방이 열려지고
경찰서에 갔었던 일도 있다. 
(경찰서에서는 오히려 장하다며 차비를 줬다고)
어릴적 외갓댁에 놀러가면 그 형 영어사전에 
'할배'라고 적혀 있었다.
워낙 대학을 늦게 들어가서 동기생들이 붙인
별명이란다.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인턴시절부터 눈만 오면 
온 동네를 다 쓸고 다녔단다. 
본인 병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안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온 동네 가난한 사람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몰려 드셨단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던 형.

자신의 간호사 중 한 명과 결혼한 형.
집안의 반대가 그렇게 심했어도 결국 결혼하여
훗날 현명한 선택이였다는 것을 증명한 형. 
(장손집의 맏며느리라 온 집안의 시선이 집중되었었다)
본인이 의사임에도 정작 아들에게는 공부를 요구하지
않던 형. 주위에서 아들의 성적에 대한 입방아가
시도때도 없이 흘러나와도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라며 전혀 흔들림 없던 형.
아들은 간호사가 되었고, 그 아이가 결혼 하던 날
자신의 교육 방식이 현명하였음을 증명한 형.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찍이 알아챘고
그것을 실천하려 애 썼으며
결국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던 형.
그래서 수 많은 장애물에도 자신의 선택에 의심이
없었던 형.

그 형이 위암에 걸렸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위중하다는 것을 오늘 아침 누나의
전화로 알았다.
죽음을 준비하는(형은 예진작에 그러한 삶을 살았었다) 형이 주위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큰 오빠의 아들이라 엄마가 형들을 업어
키우기도 한 시절이 있었단다.
엄마는 자신의 첫 조카와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내려가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치열하게 살았던가?
나는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생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치열하게 사는 것'의 껍질만 핥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떠나는 마당이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님을 망상해 본다.
내 살림살이가 아니기에.

삶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보자.
주위만 배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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