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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요즘에 기인하여

 

 

어제는 비가 흩뿌리더니, 

오늘은 작정하고 가을비가 내린다. 

어제부터 심사가 좋지 못하여 먼 도서관까지 굳이 걸어가

가지런한 자리잡은 책들을 마구잡이로 골라 읽었다.

몇 번의 성의없는 심사를 거치고는 한 번쯤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작가,

박민규의 글을 읽었다. 

 

이 작가를 안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로 회자되던 때가 수 십년은 된 듯하니. 

당시 야구 매니아였던 내게 삼미는 프로구단 같지 않던 '성의 없는' 성적을 내며

비아냥과 약자의 집합체였다. 

그 촌스러운 앰블럼과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준이하의 에피소드들.

더구나 당시 나는 삼미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던 화려한 부자구단 삼성의 어린이회원이였다.

당시 삼성과 같은 돌림의 '삼'미라서 꽤나 큰 기업인줄 알았던 꼬맹이에게 

어설퍼도 한참은 어설픈 삼미는 심심한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재수없게 걸려 장난감이 된

운수 나쁜 두꺼비와 다름 아니였다.  

그런 '기억할 가치조차 없던'  '하찮은' 삼미라는 이름을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다니

'유별난 작가네'라고 혼자말을 했을 듯 싶다.

 

그럼 왜 박민규였을까?

나비효과 같은 인연이 있긴 하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으로 떠들썩한 요즘 관련 기사들과 인터뷰가 수시로 올라오곤 하는데

그 중에 '임철우'라는 낮익은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삼미'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가와 인연이 된지도 한참이다.  

그의 이름을 알린 데뷰작이라고 할만한 '붉은방'을 읽은게 그와의 인연이였다.

어릴적 누나는 매년 이상문학상을 정기구독하듯 읽을 때였고, 

소설은 쳐다도 보지 않던 내게 읽어 보라고 권한듯 하다. 

이상문학상과의 첫만남이 '붉은 방'이였고 그것으로 이상문학상과의 인연도 마지막이 됐다.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붉은 방'은 임철우의 첫 만남으로

이후에도 간간히 그의 새 작품이 나온 홍보글들을 보곤 하였다.

의욕에 찬 신인 작가들 중 손가락 꼽힐 만큼만 몇 몇 문예집에 당선을 하고,

그 당선된 작가들 중에서도 재능과 꿈을 피워보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져 가기에

잊힐만 하면 나오는 그의 작품홍보를 보고는 한편 '대견'하게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를 기사로 다시 만났게 되었는데

기사 맨 하단에 나오는 작가 이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의 나이가 69세로 나오는게 아닌가.

세월의 강단(剛斷)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였다.

작가로 데뷔하던 싱싱한 막 나온 이파리로 기억되던 그가 70이 다 되었으니.

 

하여간 그래서 박민규라는 작가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을게다.

오래된 추억같은 이름으로, 특히 청춘이라는 강력한 매개체와 연계되어.

그렇게 그가 수상한 문예집의 짧은 글을 몇 편 보게 되었고,

그가 이상문학상도 수상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임철우를 추억하며 박민규의 이상문학상을 읽게 될 주이야.

 

박민규의 글은 무겁고 쾌쾌하고 눅눅한 종이박스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이다.

그는 죽음, 인간 그런것들을 하찮게 비쳐지면서도 또한 오롯히 그렇게 명제하지 않는다. 

내 기분을 맞춘듯이 그리고 비가 내릴 것도 알고 있었듯이

그래서 내가 이 시간을 기다려 자신의 작품을 읽을 것을,

그것도 10년도 더 된 옛 작품을 고를 것을 알았다는 듯이...

 

사업이 망해 엊그제 사무실까지 빼고 집으로 짐을 옯긴, 

근래 만나면 죽음이라는 주제만 말하는 친구네 집으로

막걸리 두 통을 사서 찾아가는 것이 오늘의 할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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