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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팔짝

만나는 사람이 나의 수준을 결정한다

 


  사람의 행복은 기대감의 크기에 좌우 된다고 했다.
우리가 희망이나 꿈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마음을
상하게 했던 이유이다. 괜시리 기대에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어긋난 결과에 무너져 내리던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 순간의 허망함은 명치 끝의 찌릿한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무언가 찜찜하게 시작된 일은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괜찮겠지'라는 자기위안과 결과의 달콤한 꿈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 뒤로 뿌려졌던 그 찜찜함의 씨앗은
뭉개구름같은 그림자로 반드시 재 등장한다.
인과는 범용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하지만 법은 멀고(당장 체감되지 않고) 주먹은(이익)은
가깝다. 
이익을 따라 갈 수 밖에.
 
  그렇게 꿈꾸었던 '찜찜함'이 결국은 드러나는 요즘이다.
일의 손해를 떠나 억울함은 가장 큰 분노이다.
왜 이런 유치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까
생각해보았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일을 일으킬 사람들과 섞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일들이 반복하여  일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
그런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면 된다.
이익보다 그 잣대가 우선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번 일은 내가 이익을 우선하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지인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일이 번지게 된 것이다.
어쩔수 없이 지인의 지인과 섞이게 되면서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예의 나의 그 오지랖과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지인을 통한 '그런 사람'과의 섞임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내가 원인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그래서 또 다시 다짐해 본다.
그곳에 이익이 걸려 있다손 치더라도
누가 그 이익에 관여되어 있는지 살피고
내 기준에 어긋난 사람이라면
그 이익이 비록 크고 향기롭다 하더라도
차라리 굶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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