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팔짝

지나가고 떠나가고

mydoorstone 2023. 11. 13. 12:06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니가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온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속히,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 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 따뜻한 적막, ‘지나가고 떠나가고’, 이태수 -


* 지금 내가 겪는 이 곤란도
처음에는 작고 귀여운 산들바람과도 같았을지 모른다.
보잘것 없게 생각했던 작은 선善에 대한 외면과
그깟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뿜던 무의미한 분노
그러한 것들이 자라나 이 처럼 거친 괴물이 되어 버렸을 거다.

작은 아이가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할 방법은
거칠어 지는 것 뿐.
나는 살아남은 그 작은 산들바람을 귀여운 아이를 죽인다.
그것은 나의 적이 아니였었지.

그 작고 여린 나의 숨결은 그렇게 지금의 나를 기억하고
찾아 올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가,
한때 나는 너의 숨결이었다.

아 가엾은 것아
나의 원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