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핀 연꽃, 목련
나무 끝의 부용꽃 木末芙蓉花
산중에서 붉은 꽃망울 터뜨렸네 山中發紅萼
개울가 집엔 적막히 인적 없는데 澗戶寂無人
분분하게 피었다가 지네 紛紛開且落
왕유, 「신이오」
당나라 왕유王維의 유명한 시 「신이오辛夷塢」 입니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 [畵中有詩]”
라는 그의 시와 그림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이 시는 한 폭의 그림을 통해 높은 선적禪的
경계境界를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읽어보면 참으로 흉금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창밖에는 4층 높이의 커다란 일본 백목련이
있습니다. 일본목련은 꽃이 커서 아름답습니다.
다만 꽃이 질 때는 대부분 나무에 매달린 채 까맣게
썩어버리기 때문에 좀 언짢은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해마다 나에게 봄소식을 전해준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분분하게 꽃을
피웠다가 졌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녹음이 짙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목련을 보며 해마다 목란주를 생각하고, 김시습과 왕유를 생각하고,
간혹 남장 차림으로 전장에 나가 전공을 세운 여전사 뮬란[목란]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는 나의 봄날의 복이라고 여깁니다.
- 기태연, '나무에 핀 연꽃, 목련', 꽃, 들여다 보다
* 아주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1학년 혹은 2학년때, 늦지 않은 밤에 마당에 나왔다.
보름달이 뜬 날이였다.
마치 대낮같이 밝은 밤에 활짝 만개한 목련이 표현키 힘든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 광경에 매료되어 오랜시간이 지나도 이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더 나아가 반드시 이 순간을 회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의 감성과 그 풍경이 만들어 낸 그 순간은 감동 그 이상의 찰나였다.
그때 이후로, 아니면 그 전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난 목련을 좋아하게 됐다.
매년 봄이 오면 양희은의 '하얀목련'을 조용히 부르며 목련이 피는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오늘은 봉우리, 오늘은 방울이 터졌네,
그리고 하루 자고나면 마치 백조가 날개를 편 듯한 그 우아함이라니!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목련봉우리가 방울방울 보이면 비로소 봄을 알아챈다.
그렇지, 목련이 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나의 봄날의 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