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지막 밤은 온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밤은 온다
에르빈 콤파니에Erwin Kompanje(임상윤리학자)
내가 이르마를 처음 본 건 어느 초저녁 무렵이었다.
그날 30대 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조깅을 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병원으 로 실려 왔다.
정밀검사 결과 뇌출혈이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밤샘 근무를 자청했다.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혈압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이튿날 아침까지 최종결정을 유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녀는 내내 혼수상태에 빠져 있 었다. 뇌사 가능성이 높았다.
이르마의 남자친구가 병실을 지켰다.
나는 당시 뇌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면서 환자 가족들과 접촉이 잦았던 터라,
직업적 인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내 방어막을 금세 파고들었다.
길고 긴 의논을 하던 중 우리는 서로 속 깊은 얘기까지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는 영어 교사였고 나는 열렬한 영문학 애호가였다.
그런 공통점 때문인지 대 화를 나누는 사이 밤은 천천히 깊어갔다.
그가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여자친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면서 '이별은 달콤한 슬픔'이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했다.
작별의 애달픔도 언젠가는 두 연인이 함께 한 사랑과 삶의 추억 속으로 스며들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건넨 말이었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급박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렀을즈음, 이 날이 자신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라는 걸 자각한 그는
병 실 바닥에 누워 있어도 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곧바로 그녀 옆에 침대 하나를 더 들여보내고는 등의 조도를 낮춘 뒤 모든 알람장치를 꺼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곁에 누웠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팔을 둘러 주었고,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둘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그를 깨우러 갔다. 몇 시간 후 신경과 전문의 가 재점을 했다.
모든 것이 확고해졌다. 뇌사 판정이 내려지고 인공호흡기는 거두어졌다.
그날 아침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우리가 삶을 얼마나 당연시 하며 사는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이르마는 조깅을 끝내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잘 다녀오라는 키스를 해주던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곧 다시 연인을 보리라 믿어 의심지 않았을 것이다.
맑은 하늘이 한순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바뀔 수 있다는건 상상조차 못한 채.
이르마의 남자친구로부터 부고를 받은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셰익스피어의 문구를 암송하는 남자친구의 애도사를 듣자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 또는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밤은 언제든 결국 오게 된다.
평소 우리는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가늠조차 못한 채 산다. 하지만 그는 그걸 보았던 셈이다.
그는 정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마웠다고 나에게 인사했다. 이르마가 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와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 역시 그가 마지막 밤을 추억으로 간직하도록 그에게 닥친 슬픔에 조금이나마 달콤한 위로를 덧입혀줄 수 있었다.
20년도 더 지났지만, 그 밤의 일을 못 잊는다.
삶의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같이 누울수 있는 안락한 침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행복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 속에 있다.
그리고 삶은 불멸이라는 환상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작별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능한 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야 한다.
이르마의 남자친구와 나는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내 박사 학위 수여식에도 와주었고, 이르마가 떠난 지 5년 후 내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이르마의 비석에는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가 그녀 곁을 지키던 그 밤, 내가 인용한 <로미오와 줄 리엣>의 그 대사 한 줄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 엘렌 드 비세르(Ellen de Visser), ‘누구에게나 마지막 밤은 온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 -
*경험은 힘이 있다. 지식이 채울수 없는 경험만의 ‘앎‘이 있는 있는 것이다.
오래전 어린시절에는 지식이 경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적이 있다.
책을 통한 지식이 - 빠르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 더디고 번거로운 경험보다
’지성적인 경험‘이라고 맹신하던 모가 난 젊은이 였다.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우습게 생각했다.
경험이나 현장의 중요성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 배경인, 독서의 위대함이 가지고 있는 진리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점차 깨닳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경험이나 현장의 힘이 지식을 압도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식이 넘을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얻을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현장의 경험들이 날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유려한 문장이나 수식이 필요 없다.
현장의 그 강력한 경험이 오롯이 전달되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삶의 현장‘ 말이다.
친한 스님의 문자가 떠 오른다.
’00당,
매순간이 실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