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화살
“말룽꺄뿟따여!
어떤 사람이 독이 잔뜩 묻은 화살에 맞았다 하자.
그의 친구나 동료나 일가친척들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데려올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이 크샤뜨리야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를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화살을 쏜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고
성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한다.
‘네게 화살을 쏜 사람의 키가 큰지 작은지,
피부색이 검은지 누런지를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화살을 쏜 사람이
어떤 마을, 어떤 성, 어떤 나라에 사는지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쏜 화살의 활이 어떤 활인지 석궁인지,
그 활줄이 실인지 갈대인지 힘줄인지,
그 화살대가 야생의 갈대인지 기른 갈대인지,
그 화살대의 깃털이 독수리의 것인지,
까마귀의 것인지... 이런 것들을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 ‘14무기’ 중, 전유경, 중아함경 -
* 이것이 망상(妄想)의 위력인 것이다.
이러한 위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행(行)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마치 무조건반사와 같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그것을 직시하는 것조차 어렵다.
(어려움의 근간은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있다)
그 무조건반사와도 같은 망상은 우리의 오래된 습관에 의존한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성되어 온 습관을 극복하는 방법은 견성 밖에 없으며
(해탈도 열반도 아닌) 견성 후에도 보림(保任)이라는 시간을 보내야만 할 정도로
습관의 위력은 대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속성이 그러하니 그 속성의 뿌리까지 거부하지는 못 하더라도
저급한 망상에 휘둘려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첫 번째 독화살은 어쩔수 없이 맞으지언정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연달아 맞지 말자는 것이다.
온갖 감정들,
분노, 경멸, 자괴감,…
무엇보다 남들에게 ‘나’를 내 세우고 싶을 때에는 이미 화살을 맞아 버린 것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첫 번째 화살을 뽑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