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아나키스트의고백(ElArteDeVolar)
El Arte De Volar (비행의 예술)이라는 원제를 가진 이 스페인 만화는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의
아버지에 대한 글과 킴(KIM, Joaquim Auberrt i Puig-Arnau)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책 서두에 언급되었던 홍세화의 리얼리즘 문학이라는표현마냥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쉴 틈없이 보여지고 있다.
그런 격동의 삶이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다.
우리는 더하면 더했을 격동의 세월을 지나온 할아버지,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 생사가 오가는 시절에 아나키스트를 꿈꾸지 않았던 이들은 얼마나 될까
치열한 시대를 더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이 '인생의 실패자'로 보이는 새로운 시대에
청춘과 사랑은 찰나의 기억으로 흔적만 남아 있고 한숨 돌리고 나니 온 인생이 다 지나버린,
과거 '유난한 시대'의 사람들. '아름다운 비행'만이 그 생에 유일한 한 사내의 '만족스러운 자유의 발현'으로
그 시대는 마감한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첫 출산을 하게 되어 '어머니'가 됨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는
'경험의 자격'을 가지게 되듯이 남자들도 아버지가 지나오셨던 남자의 길을 살게 되며
'아버지'가 되어 감으로써 '아버지'를 이해하는 '경험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아들의 삶은 아버지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한다.
그들이 '아버지가 살아던 삶'을 살게 되면서 비로서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되고
꽤 오랫동안 없었던 관심도 갖게 된다.
아버지의 삶의 방식으로 살던 그렇지 않던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다.
내게 그 첫 경험은 군대였다.
군대 영장을 받고서 훈련소 입소날을 기다리며 처음으로 아버지도 이 시절을 지나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혈기 넘치던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거친'곳으로 '끌려가는' 두려움을,
무엇보다 이제 이 시절에 만끽하던 자유가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는 미래에 대한 정신적 두려움을,
내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더 혹독한 상황에서 지나왔음을 깨달게 되었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닌
한 남자로 보이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나의 일방적인 젊음의 혈기로 서먹하였지만
(지나와 보니 내 주위 대부분의 사내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그 경험의 이해가 시작되는 발화점은 나보다 먼저 산 '사내'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 삶에 대한 첫 겸손함이였다.
어린 사자가 자라 새로운 무리의 리더가 되듯이 나는 우리집의 가장이 되었다.
영역싸움을 하듯 긴장관계에 있던 아버지는 이제 가장이라는 책임으로 무장된 내 울타리 안에서
뒤로 물러나 계신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사진은,
바다가에서 수영하는 탄탄한 몸의 검게 탄 청년,
아련함 느껴지는 고등학교 흑백 졸업사진,
산업시절의 직장동료와 패기 넘치는 회사원,
나를 안고 있는 앳되보이는 젊은 가장 (슬프게도 이때 이미 머리가 많이 빠지고 계셨다 하하하 ㅠㅠ),
내가 지나온 날들이 감정이입이 되면서 퍼즐이 맞춰지듯이 아버지의 지난 많은 것들이
내 경험에 덧 씌워지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삶은 정신차릴 새도 없이 흘러가버렸지만...
언젠가 내 자식도 이러한 경험으로 한 무리의 가장이 될 날이 올것이고 그때야 비로서 내 삶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들에게 그러한 '경험의 이해'의 날이 올것을 아버지께서는 묵묵히 기다리고 계셨을까
이 책은 숨막히도록 빠르게 지나가는 한 사람의 생을끝마치고 에필로그로 마무리 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책에 대한 이해와 사실성을 더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에필로그 첫장에 실린
이 책의 주인공인 저자 아버지의 흑백사진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증폭을 가져온다.
작가가 굳이 아버지의 '비행의 예술'을 적나라하게 보인 것은, 신발만 남은 창가 장면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전달을 할 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 남자'의 삶에 대한
경험적 이해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리얼리스트(realist)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적나라하게 들어난 벌거숭이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발가벗긴 생이 실패한 삶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너무도 뻔한 삶의 궤도를 간파하더라도 우리는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다.
창가에 남겨진 신발이 '신발' 그것일 뿐이듯이 우리의 삶도 '삶' 그것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