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동반자, 존 오도나휴/ 류시화 옮김
한 줌의 흙이 있었다. 흙은 기억을 갖고 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자연의 순환을 거치면서 그 흙은 둘로 나뉘어, 각자 다른 사람의 몸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원래 하나였던 그 흙은 서로를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그것은 사랑보다 더 절실한 일체감의 기억이다.
흙의 분리는 곧 존재의 고독이다.
분리되어 있을 때 생은 어둠 속에 있다.
꿈 속에서, 무의식 저편에서 일체감의 기억이 누군가를 그리워 하지만
현실의 시간은 우리를 더 큰 고독 속으로 데려갈 뿐이다.
하나였던 흙은 서로를 발견하기까지 생은 무수한 기다림과 공허함의 반복이다.
흙이 서로를 기억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영혼의 동반자'가 서 있다.
그는 한 몸이었던 시절의 충만함과, 분리되어 있던 긴 세월의 고독감을 이해한다.
두 팔의 껴안음은 오래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흙의 껴안음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분리되기를 원치 않는 흙의기억이 비로소 완성을 이룬 것이다.
영혼의 동반자를 발견할 때, 그 사랑은 모든 관습과 굴레를 뛰어 넘는다.
이제 우리는 결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으로 빛이 나는 얼굴 앞에서는 세속적인 것들이 전부 의미를 잃는다. 사랑은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 신은 절대적인 것을 원한다. 부분적인 만족이나 낮은 땅에서 배회하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이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저 공허할 따름이다.
이 영혼의 동반자를 켈트 인들은 '아님 카라'라고 불렀다.
'아남'은 고대 아일랜드 어로 '영혼'을 뜻하며, '카라'는 동반자다.
자기 삶의 숨은 비밀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원래 하나의 흙이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가 곧 영혼의 동반다.
- John O'Donohue/ 류시화 옮김, 영혼의 동반자 -
* 원작 'Anam Cara'의 한국판.
사랑은 존재하는가.
외로움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을 위해 태어난 신과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그 불완전을 채우는 영혼의 완성인가...
사랑하지 않고 인생을 논하랴.
인생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에 때때로 삶을 쥐락펴락하는 그것.
안타깝게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기더라도 자존심, 거절에 대한 두려움, 위신, 등의 쓸데없는 걱정들로 인해 아름다울 수도 있었던 인연들을 흘려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성공이 우리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것을 향해 전진한다.
사랑에는 왜 그렇지 못할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사랑도 접는 것이 사랑일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일 뿐이다.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을 가지고 거래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니다. 되지도 않는 감정에 휘둘리는 관계가 아니라
제대로 공유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